소련의 끔찍했던 부상병 대우

소련의 끔찍했던 부상병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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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50만명 가량의 소련 병사와 장교들이 2차 세계 대전의 전장에서 팔다리를 잃었음.

그들은 시민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이 쓸모없고 직업도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았음

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부상병들은 돈을 벌기 위해 거리, 극장, 시장을 배회하고 구걸함.

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이들을 보고 심기가 불편해진 스탈린

이 흠있는 무리들이 소비에트 도시의 미관을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없애라고 명령함.

1949년 스탈린의 생일을 맞아 여러도시에서 불구가 된 참전 용사들은

병원에 있던 자들까지 납치되어 트럭에 던져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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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국경 근처의 라도가 호수로 쫓겨나 그곳에서 배를 타고 발람 섬이란 곳까지 감.

수도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상이용사들이 수용됨.

팔다리가 없는 참전용사들은 마치 흉악범마냥 가혹한 환경에 고립되었음.

왜냐하면 그들은 적과의 전투에서 죽지 않고 불구가 된 죄인이었기 때문.

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사모바르 : 러시아식 물끓이는 주전자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소련인들은 냉소적으로 '사모바르(Самовар)'라고 불렀음. (팔다리가 없는 모습이 주전자와 닮아서)

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사모바르들은 아기처럼 강보에 싸여있었고 (위 그림) 그 상태로 배설을 했음.

여름에는 이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와 강이나 호수 옆의 잔디에 놓아두었고, 그들의 배설물은 수로로 떨어짐.

일부는 몸을 굴려 익사를 시도함. 간호사들은 그들을 동정했고,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기위해 사모바르 합창단을 만들기도 했음.

처음 몇 년간은 건물에 전기도 난방도 없었고, 의료실도 없었음

많은 상이용사들이 감기와 가벼운 질병으로도 사망함.

1000085456.jpg 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발람섬 뿐만 아니라 다른 유사한 시설이 소련 전역에 생겨났음.

모두 외지고 추운 곳에 위치하고 대다수가 사람의 거주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버려진 곳이었음.

이런 수용소 에서 100,000~200,000명 가량의 불구가 된 참전 군인들을 수용함.

어머니, 아내. 남매들은 국가에 납치된 가족을 찾아다님

많은 여성들이 장애인의 집에 문의를 하거나 심지어 찾아오기도 했지만 운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었음.

소련의 끔찍했던 참전군인 대우

일부 상이용사는 고의적으로 가족 앞에 나타나지 않고 실명을 숨기기까지 했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추함과 무력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

이렇듯 이들은 기억의 뒷편으로 사라졌으나 몇몇 사람들은 사라져간 사람들을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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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화가 게나디 도브로프 (Геннадий Добров)도 그들 중 하나였음.

그는 1974년부터 이들을 모델로 한 소묘들을 그림.

그는 어렸을 때 아랫집에 세들어 산 상이용사 가족들 덕분에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이들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이런 그림을 그림.

그의 작품 덕분에 소비에트 인민들은 사모바르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뒤늦게나마 알게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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